2021. 9. 28. 16:40ㆍ잡동사니
현재 우리 인류는 수많은 종류의 항생제를 사용하여 세균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 참고: 세균(bacteria)과 바이러스(virus)는 전혀 다른 물질입니다. 세균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균입니다.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의 발견 그리고 페니실린 내성균의 등장에 따른 후속 항생제의 개발과 사용 등 비전문가가 반코마이신 썰을 함 풀어 보겠다.
1928년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은 우연한 기회로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된다. 미생물 배양용 접시(petri dish)에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을 배양하고 있었는데 그만 배양 접시 뚜껑을 닫는 것을 잊은 채 여름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 휴가에서 돌아와 보니 배양 접시에 핀 처음 보는 곰팡이 주변의 포도상구균이 죽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플레밍은 이 현상을 그냥 지나치치 않고 포도상구균을 먹어치운 곰팡이의 성질을 연구하여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곰팡이가 바로 푸른곰팡이로 알려진 녀석이다.
사실 플레밍이 푸른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을 최초 발견한 업적이 있지만 플레밍의 업적은 딱 여기까지이다. 오히려 그는 이후 별다른 과학적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였으며 푸른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 추출에 거듭 실패하자 아예 이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끊어버리기도 했다.
페니실린에 관한 과학적 연구와 이로부터 상업적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들은 따로 있었으니 그 당시 옥스퍼드 대학의 에른스트 체인(Ernst Chain), 에드워드 아브라함(Edward Abraham),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 등이다.
이들 중 하워드 플로리가 페니실린 대량 생산에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하워드는 호주 태생의 병리학자였으며 옥스퍼드 대학 병리학 교수를 재직하면서 페니실린 연구를 주도하였으며 영국 정부에 페니실린 대량 생산을 위한 수 차례의 지원 요청이 무산되자 1941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 정부에 이를 요청하였고 결국 1942년 미국의 Merck사에 의해서 소량이지만 미국 내 최초 페니실린 생산이 이루어졌으며, 이 시기는 세계 2차 세계대전 중이었으며 미국 전시생산국(War Production Board; 2차 세계 대전 중 군수품의 관리, 통제를 담당하던 기구)에서는 유럽 전선에서 추축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 병사들의 치료에 페니실린을 사용하기 위한 대량생산을 계획하게 되었고 미국의 화이자(Pfizer)에서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때 대량 생산의 기술적 아이디어는 화이자의 Jasper H. Kane 내었고, 이를 실제 상업적 대량 생산으로 가능케 했던 인물은 Margaret H. Roussea란 화이자에 근무하던 여성 화학공학자였다. 마가렛은 미국 화학공학회(American Institute of Chemical Engineers) 최초의 여성 가입 멤버이기도 하다.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으로 인하여 목숨을 건진 이가 2억 명이 넘는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 과장이 있을지언정 페니실린이 구한 목숨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알렉산더 플레밍(사실 최초 발견 말고는 별다른 과학적 기여는 없음), 에른스트 체인, 하워드 플로리는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목숨을 구한 페니실린이었지만 이 약물은 독성도 심했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었으며 더 큰 문제는 페니실린에 내성을 보이는 새로운 세균이 등장함으로써 곧 시장에서 퇴출되었고 이를 대체한 새로운 항생제로서 1959년 메치실린(Methicillin)이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그러나 세균이란 녀석은 지구 상에 인류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온 녀석들인데 이렇게 쉽게 박멸될리 없었다. 메치실린 항생제에도 곧 내성을 보이는 세균이 나타남으로써 결국 페니실린 계통 항생제로 죽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즉, 메치실린 내성 황색 포도상구균(MRSA; Methicill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의 등장이 그것이다. MRSA의 최초 보고는 1961년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페니실린 항생제의 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있었는데, 1952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 파견된 한 미국인 선교사인 Reverend William Bouw가 현지 토양 샘플을 채취하여 미국 Eli Lilly 제약사에 근무하던 자신의 친구인 유기합성과학자 Dr. E. C. Kornfield에게 보냈는데, 이 토양 샘플에서 Streptomyces orientalis라는 물질(추후 화합물 05865라 명명함)을 분리하였으며 이 물질이 그람 양성균을 매우 잘 죽일 수 있음을 연구를 통해서 밝혀낸다. 결국 05865 화합물은 1958년 미국 FDA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아 시장에 출시되었으며, 오늘날까지 MRSA 치료를 위해 인류가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항생물질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여기서 교훈: 친구를 잘 두면 역사에 나도 이름을 남길 수 있다. 고로 친구를 잘 사귀란 말이지. ㅋㅋ.
반코마이신이란 이름은 "Vanquish"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인데 vanquish 단어의 뜻은 완파, 격파의 뜻을 갖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적이었던 반코마이신에게도 내성을 가진 세균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를 반코마이신 내성 포도상구균(VRSA; Vancomyc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이라고 한다. 보통 뉴스에서는 대중들이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슈퍼박테리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MRSA, VRSA 등에 감염되면(주로 병원 내 감염으로 주로 발생하는데 개복수술 같은 큰 수술을 받은 환자의 상처 감염에서 기인) 치사율이 높아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해결책은 이를 무찌를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가 있어야 한다.
페니실린, 메치실린, 반코마이신 등의 항생물질 이후에도 수많은 차세대 항생제가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인류는 세균과의 전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어찌 보면 빠르게 진화(변이)화는 세균에 신속하면서도 효과적인 대처를 못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1958년에 개발된 반코마이신을 60년 넘게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는 인류는 아직까지 이 보다 더 강력하면서 효과적인 항생물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과 유럽의 유수한 초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20여 년 전쯤에 항생제 사업 분야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 이유는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더 이상의 효과적인 항생제 개발이 거의 불가능한 임계점에 도달하였고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투자해도 투자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항생제 사업 분야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앞으로 우리는 어쩌라고? 나 같은 이 분야의 비전문가가 알 수가 있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 영화에서 주인공인 쿠퍼가 극 중에서 이런 대사를 읊조린 바 있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조만간 극복할 것이다. 이제 그 끝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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