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3. 21:08ㆍ잡동사니
2020년 기준 전 세계 제약회사 Top 50에 대한 포스팅에 이어서 시곗바늘을 20여 년 전쯤으로 옮겨서 오늘날의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어떻게 몸집 불리기를 하여 소위 "규모의 경제"를 이뤘는지 인수합병에 관한 썰을 함 풀어 보겠다.
20세기 말엽에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화학적 화합물을 통한 의약품 신약 생산이 기술적으로 한계에 다다랐음을 깨닫고 각자의 살 길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더군다나 뉴 밀레니엄 시기까지 닥쳐오면서 그 조급함이 회사를 막론하고 비슷한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생각 수준이란 게 다 비슷한지라 주판알 튕기는 전문가들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덩치를 키워서 시장 지배력을 더 강화하여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성이 잡혔다. M&A이 대상이 되는 업체는 자기 회사가 갖고 있지 않는 제품군을 보유하면서 수년 이내 신약 출시 가능성이 높은 후보 약물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들이 주 타겟이었다. 이로부터 초거대 M&A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전 세계 모든 업종을 망라하여 초거대 M&A 성사 탑 랭크는 전부 제약회사들이 차지하고 있음.)
(시기, 순위 등 숫자는 틀릴 수 있으므로 감안하시기 바람.)
정확한 시작점을 적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굵직굵직한 케이스를 중심으로 기술한다.
맨 먼저 커다란 행보를 보인 곳인 다름 아닌 영국의 글락소(Glaxo)였다. 1995년 글락소는 영국의 웰컴(Wellcome)을 인수하여 전 세계 제약회사 순위 3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인수 후 회사명은 글락소 웰컴이었다. 그리고 2000년 1월에 들어서 영국의 유수 제약업체인 스미스클라인 비참(Smithkline Beecham)을 인수하겠노라고 발표하였고 이는 곧 성사되었다. M&A 인수 가격은 760억 불이었다. 웰컴을 인수하여 전 세계 순위 3위에 올랐는데 스미스클라인 비참을 인수하면서 1위로 잠시 올라서기도 했었다. 그래서 오늘날 글락소 스마스클라인(Glaxo Smithkline)이라는 회사가 탄생하였고 흔히 약자로 GSK라고 부른다.
(스미스클라인 비참 역시 스미스클라인과 비참이라는 회사가 합병되어 1989년에 탄생한 회사임. 항생제로 명성이 높았던 회사였음.)
글락소의 M&A는 다른 다국적 제약회사들에게도 이 총성 없는 전쟁에 뛰어들게 했다.
1999년 영국의 아스트라(Astra)와 스웨덴의 제네카(Zeneca)가 합병되어 오늘날의 아스트라-제네카가 탄생하게 되었다. 현재 기준 영국 내 순위로 GSK에 이은 두 번째 회사이다.
독일의 훽스트(Hoechst)는 미국의 마리온 러셀(Marion Roussel)과 1995년에 합병되었다가 1999년에 프랑스의 유수한 제약업체였던 롱프랑로라(Rhone Poulenc Rohr)와 합병하여 아벤티스(Aventis)가 탄생하였다. 아벤티스는 그 후 2004년 프랑스의 사노피 신데라보와 합병되어(성사 가격 735억 불) 사노피-아벤티스가 탄생하였으며 2011년 사명을 사노피(Sanofi)로 변경하였다.
(사노피 신데라보 역시 사노피와 신데라보 사이의 합병으로 탄생한 프랑스 회사임. 사노피는 전통적으로 백신에 강점을 가진 회사이며 사노피-파스퇴르라는 백신 전문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음.)
한편 미국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인 회사는 화이자(Pfizer)였다. M&A를 하기 전 화이자는 그 당시 전 세계 순위로 10위권 중반 정도의 회사였다.
화이자는 미국 소재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워너 램버트(Warner Lambert)를 2000년 2월에 적대적 M&A를 통하여 인수하였다. 워너 램버트는 그 당시 화이자보다 매출액이 더 높은 회사였다. 고지혈증 치료제로 유명한 리피토(Lipitor)가 바로 워너 램버트가 개발한 약물이다.
(워너 램버트 역시 워너라는 회사와 램버트란 회사가 1955년 합병되어 만들어진 제약회사임.)
화이자의 워너 램버트 인수 가격은 무려 1118억 불(현재 환율로 약 130조 원) 이었다.
(M&A 비용은 발표 자료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니 이는 감안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나라 신문에서 검색된 자료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10위 중반에 랭크하고 있던 화이자는 워너 램버트를 인수함으로써 일약 전 세계 제약업체 1위로 우뚝 서게 되었다.
화이자는 M&A로 쏠쏠한 재미를 보자 지금까지 M&A를 통한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올린 회사로 유명하다.
거대 M&A로 1등 자리가 이 회사 저 회사로 왔다 갔다 했으며, 화이자는 2003년 파마시아라는 미국 다국적 제약회사를 643억 불에 인수하였고, 2009년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와이어스(Wyeth)를 680억 불에 인수함으로써 이때부터 초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로서 1위 자리를 지금까지 꿰차고 있다.
(와이어스는 AHP; American Home Products 라는 이름의 화사였는데 사명에서 제약회사다운 느낌이 전혀 없다 보니 심지어 미국 내 설문조사에서 가정용 물품을 만드는 회사로 느껴진다는 결과가 나와 결국 창업자의 이름을 따서 2002년 와이어스로 사명을 바꿨다. 그러나 몇 년 후 화이자에 인수됨으로써 그 운명을 마감하였다.)
(화이자가 인수한 위의 회사들은 M&A를 하기 전 기준으로 보면 화이자보다 덩치가 더 큰 규모였다.)
이런 M&A는 전통적 화학적 화합물로 제품을 만드는 회사 간의 합병이었는데 20세기 후반 무렵에 태동한 바이오 스타트업 회사들이 21세기 들어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바야흐로 small molecule에서 large molecule로의 전환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이오 스타트업 회사 중에서 1987년 설립된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는 오늘날 짧은 업력에 비하면 괄목한 만한 성장을 하여 Top 10 자리에까지 올라섰다. 길리어드는 오늘날 항바이러스 의약품 제조 분야에서 최고 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경 조류 인플루엔자(신종 플루)가 발병했을 때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었던 타미플루(Tamiflu)는 길리어드가 1996년에 개발한 약물이며 이를 스위스 로슈가 특허권을 사들여 독점 생산하였다.)
Small molecule 중심의 전통적 제약회사 강자 간의 M&A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은 회사는 바로 스위스의 로슈(Roche)였다.
로슈는 그 당시 가장 핫한 large molecule 업체 중 최고 선두인 제넨텍(Genentech)을 2009년 440억 불에 인수하게 된다. 이로서 로슈는 small molecule부터 large molecule까지 아우르는 제품 파이프라인을 갖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 Top 3 내에서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의 강자가 되었다.
로슈의 바이오 의약품 업체 인수는 타 회사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이후 너 나 할 것 없이 바이오 업체들이 속속 M&A에 대상이 되었으며 이제는 바이오 의약품 사업이 모든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캐시카우가 되었다.
한편 미국의 또 다른 다국적 제약회사인 애보트(Abott Laboratories)는 2011년 사명을 애브비(AbbVie)로 사명을 바꾸었다. 애브비는 류마티스 관절염에 사용하는 휴미라(Humira)라는 바이오 의약품으로 지금은 특허가 만료되었지만 단일 의약품으로 2020년 기준 190억 불(한화로 약 22조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애브비는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 보톡스 제조의 세계 최고 강자인 앨러간(Allergan)을 630억 불에 인수하였다.
20세기 말 기준으로 Top 10 내의 회사 중 거대 M&A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회사가 2개 있었는데 하나는 한때 의약품 시장의 세계 최고 강자였던 미국의 머크(Merck)였고, 또 하나는 세계적 강자 중의 하나인 미국의 일라이 릴리(Eli Lilly)였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최애 하는 회사들이다.
(머크라는 회사는 지구상에 2개가 존재한다. 하나는 독일 소재의 머크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소재의 머크인데 이들 두 개 회사의 뿌리는 같다. 시작은 독일의 머크 가문에 의하여 1668년 소규모 약종상으로 출발하였는데 1891년 머크 가문 중의 한 사람인 George Merck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머크 미국 지사를 설립한 바 있다. 그러나 독일이 일으켰던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적국과의 교역법(Trading with the Enermy Act of 1917)"을 발동시켜 미국 내의 모든 독일 자산을 강제로 미국 소유로 동결하거나 압류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미국 머크는 졸지에 독일 머크와 완전히 분리되어 각자 도생하기에 이르렀다.
후일 1953년 머크는 미국 소재의 Sharp & Dohm 이라는 회사를 합병하여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제약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 머크는 회사 이름의 혼란을 방지하고자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머크를 유지하고 그 외 국가에서는 MSD(Merck Sharp & Dohm의 약자)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편 독일 머크 역시 지금도 제약업뿐만 아니라 시약, 시액 등 화학전문회사로 명성이 드높은 회사이다. 독일 머크는 제약업종 전 세계 순위에서 약 25위 정도에 랭크되어 있다.
미국 머크는 경쟁사들이 거대 M&A로 몸집 불리기를 할 때 한발 물러선 전력이 결국 규모의 경제에서 뒤처지자 뒤늦은 2009년에 미국 소재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쉐링 플라우(Schering Plough)를 471억 불에 인수함으로써 나름 경쟁력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한때 부동의 세계 1위를 차지하던 회사라서 지금 순위는 약 5위 정도지만 여전히 그 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중소 규모의 M&A 이력은 있지만 과거 Top 10 중에서 유일하게 거대 M&A를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제 갈 길만 가고 있는 회사이며 규모의 경제에서 뒤처져서인지 지금은 약 15위 정도의 순위를 지키고 있지만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세계적 강자 중의 하나이고, 의약품 제조 역사에서도 굵직한 기록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다. 다국적 제약회사 종사자들 사이에서 제품은 참 잘 만드는데 마케팅 & 세일즈를 잘 못한다는 안타까운 소리를 많이 듣는 회사이다.
대부분의 거대 M&A는 미국 회사와 미국 회사, 또는 유럽 회사와 유럽 회사끼리의 합종연횡이 대부분이며 물론 미국 회사가 유럽 회사를 또는 유럽 회사와 미국 회사 간의 M&A도 여러 건 있다.
일본의 부동의 1위 제약업체인 다케다(Takeda)는 2018년 아일랜드의 샤이어(Shire)를 620억 불에 인수하여 일약 전세계 Top 10에 순위를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다국적 제약회사 간의 M&A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아래 영문 위키에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M&A 이 외에도 실패로 끝난 M&A도 꽤 여러 번 있었는데 주로 적대적 M&A를 시도하였거나, 인수 가격이 안 맞았거나, 또는 악의적 조세 회피를 하려는 시도가 정부와 여론의 움직임으로 실패한 바도 있다.
화이자가 2015년 아일랜드의 앨러간을 무려 1600억 불(한화로 약 190조 원)로 인수하려고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합병이 성사되면 미국 뉴욕에 자리 잡은 화이자 본사를 아일랜드로 옮기겠다는 꼼수로 인하여 이는 미국 내 법인세보다 현저히 낮거나 면세가 되는 아일랜드로 서류상 본사를 옮김으로써 조세 회피를 하겠다는 의미였는데 그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인 힐러리 여사께서 공개적으로 미 정부는 이런 꼼수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성명을 발표하는 등 미국인 여론조차 매우 부정적이었으며 결국 화이자는 이 M&A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다소 아니 상당히 양아치스러운 화이자의 행동이었다.
(화이자는 이렇듯 신제품 연구개발 등 제약회사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난 너무 이윤 추구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이게 되는데 그래서 실제로 도덕성이 띄어난 제약회사 순위 조사에서 별 다른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몇 몇 회사가 백신을 생산하는데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미국의 얀센(존슨앤드존슨)은 이런 세계적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들 회사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고 하여 원가에 공급하고 있다. 반면 화이자와 모더나는 팬데믹이고 뭐고 간에 우리는 백신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겠소라는 입장이기에 많은 비난이 따르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재미가 있으셨나 모르겠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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